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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망각 내가 나를 삭여 촛농처럼 흘러내리면 세상은 뭐라고 할까 내가 나를 움츠려 춘삼월 잔설처럼 녹아내리면 세상은 어떻다고 할까 알까...? 나 라는 존재가 있고 없음을 세상은 알까 나를 필요로 하는 몇은 알겠지 대다수의 사람들은 모를거다 나의 기억에서 지워져가는 아스라한 추억토막처럼 나도 그리 삭제될 것이다 어쩌면 삭제조차 필요치 않을 수도... 더보기
집어등 (集魚燈) 동해바다 한가운데 오징어잡이 선단(船團)이 모였다 밤을 낮처럼 빛 덩이로 모였다 노래 흥겹던 어부는 이제 없다 집어등 열기에 등이 그을던 어부는 어디론가 가고 이제 삐걱거리는 기계가 그 자리에 앉았다 노랗고 파란 플라스틱 상자에 먹물 뿜어대는 스무 마리씩 담고 쌓는 먼 나라 일꾼만이 집어등아래 등을 태운다 더보기
아름다운 후회 아름답게 돋아나는 새싹 아름답게 반짝이는 햇살 아름답게 타오르는 단풍 그것에 너무 소홀 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옛말에 너무 충실한 그 시간 이었나봅니다 이제, 아름답던 그들이 휴식으로 가는 시간입니다 내 살아 다시 그들을 맞는다면 온 가슴 활짝 열고 그들이 오는 의미 그대로 그들 앞에 서렵니다 더보기
교우 (橋雨) 비가 옵니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 보내는 슬픔 맞이하는 환희 그런 비가 옵니다 견우와 직녀는 새가 연결 해 줬는데 이 해의 가을과 겨울은 비가 다리가 됩니다 부는 바람에 마지막 가을이 흩날리지 못하게 연(涎)으로 연(鳶)꼬리 붙이는 꼬마마냥 그렇게 비가 옵니다 * [연 涎] 입 밖으로 흐르는 침 [연 鳶] 공중에 날리는 장난감 더보기
내일을 위하여... 어젠 녹색이었는데 어젠 풀벌레 함께였는데 어젠 이슬도 놀러 왔었는데 어젠 너의 촉감이 부드러웠었는데 어젠 네 위를 걸어도 조용했는데 이젠 누렇게 말랐구나 이젠 외로움만 함께 하는구나 이젠 차가운 서리가 서걱 대는구나 이젠 거칠게 부러 지는구나 이젠 푸석대는 소리구나 하지만 넌 휴식의 시간이다 다시 어제이기 위해 잠깐 쉬는 거다 누가 널 일년초(一年草)라 했더냐 넌 영원하다 더보기
흔적 볼품없고 느려터진 달팽이를 보셨나요 그놈 지나간 뒤로 남겨진 흔적을 보셨나요 햇빛에 아름답게 반사되는 흔적 말입니다 한낱 미물인 달팽이도 그럴진데 우리네 인간이야 오죽 하려구요 서로가 피해자라고 침 튀기며 삿대질에 목청크기 아웅대는 인간 나는 떼먹어도 죽어도 받아야겠다며 멱살잡이로 셈하는 인간 인간 하나 인간 둘 인간 셋... 달팽이처럼 고운 흔적이면 좋으련만... 더보기
낙엽을 보며... 곧게 떨어지는 낙엽은 없다 잠깐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가볍고 울퉁불퉁한 생김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며 떨어진다 질곡(桎梏)이 많은 가리고 참아야 할 우리네 삶이기에 어느 순간도 곧질 못하다 낙엽이 땅으로 돌아가듯 낙엽처럼 흔들리는 우리도 땅으로 돌아간다 이 세상 모든 것 한번은 땅으로 간다 자의(自意)로 하늘을 나는 새도 하늘의 구름도 한번은 땅으로 간다 여름에 가고 싶다 미리 가서 낙엽을 이불삼아 환생의 계절을 맞을란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더보기
自問 힘들죠? 많이 지쳤죠? 이쯤에서 쉬고 싶죠? 아닌 척 하는 거죠? 어떻게 알았냐구요? 그거야 간단하지요 그대는 인간이죠? 어, 하다보니 한숨이 나오죠? 산들대는 바람가의 벤치가 아름답죠? 한순간 문득 스스로를 돌아보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죠? 그것보세요 더보기
너도? 다들 사랑 한댄다 단풍은 가을을 사랑하고 낙엽은 바람을 사랑 한댄다 왜 사랑할까? 뭣 땜에 그럴까? 얼마 전에 여름이 비를 사랑하는 바람에 온갖 낭패를 다 겪었는데 어쩌자고 다들 사랑은 한다고 그럴까? 오늘 꽃집 앞을 지나는데 꽃들이 글쎄 서로 사랑 한댄다 장미는 안개꽃을 사랑하고 히야신스는 베고니아를 사랑 한댄다 너도? 더보기
가자 그리로 가자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 허공에서 추락한 해가 닿는 곳 다시 솟았다가 또 추락하는 그곳 하루 또 하루 한해 또 한해 살고 지고 살고 지고 떨어지는 흰 머리칼 주섬주섬 챙기며 삭아드는 육신을 마음으로 지탱하며 그리로 가자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그곳 허공에서 추락한 해가 빠지는 곳 우리 뜨거운 가슴처럼 붉게 물드는 그곳 하루 또 하루 한해 또 한해 살고 지고 살고 지고 육신이야 이 빠진 범 일지언정 마음만은 굳게 살아 억겁의 세월을 함께 하리니... - 마주보며 사랑하는 이 세상 연인들께...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