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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나의 넋두리



[야생화가 몇가지나 보이시나요^^;]

주말입니다

사진이라는 걸 취미로 하는지라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엔 또 어디로 갈지 행복한 고민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진을 한다]

이 말을 하기가 두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사진이라는 건 인간이 하는 수많은 취미나 직업 중 하나일 뿐

그게 나를 과시하고 우월감을 가질 아무런 근거도 없건만

마치 뭐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뻐기고

안하무인으로 설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사진에도 많은 장르가 있으니 다른 분야는 예외로 하고

제가 가장 즐겨하는 [야생화] 쪽으로 몇 가지 경험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목불인견(目不忍見)은 꽃을 꺾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모모 클럽이나 모임 쪽에서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좀 귀하다 싶은 꽃이나 좀 특이한 모양으로 핀 꽃이나

배경이 멋진 곳에 핀 꽃이 수난의 대상인 듯 합니다

본인 이외에는 절대 찍을 수 없도록

자기가 필요한 만큼 찍은 다음 아무 죄책감도 없이 꺾어 버립니다...

그 다음은 깨끗하게 주변 정리를 하는 경우입니다

한여름에도 깊은 산에는 바닥에 낙엽이 수북합니다

그 속에서 핀 야생화를 좀 더 멋지게(?) 찍겠다는 욕심에

주변에 있는 낙엽을 깨끗하게 치우는 경우입니다

낙엽이 사진에는 방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낙엽은 꽃 입장에선 이불이자 습기와 영양분을 제공하는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이른 봄엔 보온 효과까지 있으며 찬바람을 막아주는 아주 소중한 역할을 합니다

초봄에 꽃을 찍으면서 그렇게 하는 건 엄동설한에 벌거벗고 밖에 나가는 꼴입니다

그 꽃에게 [너 내년부턴 피지마]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지는 춥다고 옷을 껴입고 다니면서...

좀 더 나은 사진을 위해 치웠으면 촬영 후엔 다시 원상복구를 해야지요?

그런데 소문난 야생화 출사지에 가보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다른 풀이나 나뭇가지를 제거하는 경우입니다

그 사람이 대상으로 하는 꽃만 소중한 게 아니잖아요

하찮은 풀 한 포기일망정 다 소중한 우리의 재산입니다

그리고 몇몇 잡초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식물은 다 꽃을 피웁니다

당장 꽃이 안 피었다고 해서 혹은 본인이 원하는 꽃이 아니라고 해서

그렇게 무차별적으로 뽑아버리고 꺾어 버린다면

그 사람이 과연 진정으로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대부분의 우리는 아마추어입니다

사진이 취미지 결코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는 겁니다

취미라는 건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으로 즐기는 게 아니었나요?

그 여리고 작은 생명에게 자그마한 배려조차 못하면서

본인의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거

과연 타당한 것일까요?

사진에 낙엽이 좀 있으면 어떻고

배경에 나뭇가지나 다른 풀이 좀 있으면 어떻습니까?

[조화의 미]라는 말도 모르는 사람들 인가요?

그렇게 깨끗한(?) 사진이 필요하면 뭐하러 깊은 산으로 갑니까

돈 몇 푼이면 화분에 깨끗하고 예쁘게 심어 놓은 거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얼마든지 제 입맛대로 조명까지 켜 놓고 신나게 찍을 수 있는데

꼴에 실감나는 사진은 찍고 싶은 건가요?

산에 갔으면 그냥 피고 지는 야생화사진이나 찍을 일이지

왜 본인의 범죄현장 사진은 찍어오고 지랄이냐 말입니다

사진을 안 하시는 분은 이해가 안 되실 겁니다

제 이야기가 뭔 말인지 궁금하시면 내일이라도 야생화가 많이 피는 산에 한번 가보세요

열 걸음만 걸어 보시면 제 이야기가 뭔 말인지 이해가 되실겁니다...

하긴...

사진 찍고 아예 캐가는 인간도 있습니다

야생화 캐고 그 자리에 본인의 양심을 묻어두고 가는 더러운 인간이죠...

사진은 뭘 찍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찍느냐가 진짜 중요한 겁니다

제 경우 별 실력은 없지만

현지의 여건에서 최선의 사진을 얻고자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수십 장 혹은 경우에 따라 수백 장도 찍습니다

그렇지만 그 꽃에는 절대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습니다

[애기똥풀]은 줄기를 꺾거나 잎을 찢으면 노란 액이 나옵니다

[피나물]의 경우 줄기를 꺾으면 붉은색 액이 나오구요

그걸 알기에 실제로 그런 사진을 찍어오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둘 다 흔한 녀석들이라 줄기나 잎을 좀 건드렸다고 문제될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참았습니다

재작년 가을에 암 수술을 하고

건강상 힘든 운동은 하기가 뭣해서

지금까지 유일하게 취미로 하는 게 어릴 때부터 했던 사진입니다

적당히 운동도 되고

공기 맑은 산에서 다니다 보면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아서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야생화가 귀해집니다

예전에 있었던 자리에 그 녀석이 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무리 주변을 훓어봐도 안 보입니다

훼손이 됐거나 누군가가 캐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작년부터 대구 인근지역에 가뭄이 엄청나게 심합니다

그래도 산에 가보면 때 맞춰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훼방만 하지 않으면 그 녀석들은 끈질긴 생명을 유지해 나갑니다

그 모진 생명력으로 우리에게 더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며칠 전 산에서 만난 나이 지긋하신 어느 진사님께서 한숨을 쉬시더군요

병상에 계신 부인이 [각시붓꽃]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작년에 본 곳을 찾아왔는데

한 송이도 안 보인다고 하시면서...

마침 제가 지나온 곳에서 본지라 그곳으로 안내를 해드렸더니

한참을 사진도 안 찍으시고 바라만 보시더군요

자연보호네 뭐네

그런 거창한 거 모릅니다

그냥 최소한의 양심만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Canon EOS 1Ds MarkⅢ + EF 28-300mm f/3.5-5.6L IS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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