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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산다는 것

 

 

 

 

 

 

 

 

 

다녀왔습니다

방사성요오드 검사결과 수술은 아주 잘 됐다고 하니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관리를 잘해야겠지요

 

지난 열흘 남짓한 시간들이 제겐 참 색다르면서 의미있었습니다

사흘간 입원한 건 어차피 예정된 일이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딱 2번 겪은 일이니 일상이라고 할 것도 없는 아주 특별한 예외 사항이었고

정작 색다름은 퇴원 후 일주일간의 시간이었습니다

 

수화도 할 줄 모르는 후천성 벙어리

그런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살면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마치 영화 예고편을 보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 주문하고

무작정 아무 숙박시설 찾아가서 방을 빌리고

초면에 글을 써서 길을 묻고...

 

 

당초 계획은 시간이 충분하니 야생화를 찾아 전국일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계획을 들은 가족들이 초상 치를 일 있냐고 결사반대를 하는 통에 경기 충청 강원도 정도로 합의를 봤습니다

일산에서 영호남 지역까지 간다는 건 너무 멀고 뭣보다 나의 상태가 걱정이었겠지요

 

 

옛말에 늙은 쥐가 독 뚫는다 했지요

즉, 세상을 산다는 건 힘만으로는 안 되고 경험과 연륜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거죠

우리 나이로 65... 어느덧 나는 늙은 쥐입니다

 

나는 내가 늙었다는 걸 절대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여 년 전부터 자칭 할배라고 했으니 늙어간다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가 늙는 덕분에 내 아이는 장년이 되었고 손주들도 쑥쑥 크잖아요

 

암 재발... 수술... 그리고 말을 못한다

이게 작년까지 상상도 못했던 변수고 적잖이 당혹스럽지만 길을 가다보면 중도 보고 소도 보는 법이지요

그래도 제법 괜찮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산다는 것 자체가 희노애락의 연속이고 늘 108번뇌와 함께 함이 제 맛이지요

너무 순탄하면 뭔 재미로 산답니까

 

 

이번에 강원도 태백에서 3박을 했습니다

태백은 아직 꽃을 보기엔 너무 이른 시기지만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거든요

사진은 1장도 안 찍었지만 여기저기 눈에 익은 나의 꽃밭들을 둘러봤습니다

 

어쩌면 다시 못 올 곳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을 겪고

비록 꽃 한 송이 안 핀 삭막한 산자락이지만 그곳에 다시 서서 그 공기로 호흡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그 산자락에서 나는 나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2016년 가을을 끝으로 올 봄까지

2년 반 정도 꽃은 물론이고 사진까지 멀리하고 살았었는데 그게 나를 무너지게 만든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07년 암 수술 후로 꾸준히 산으로 들로 다닐 땐 그래도 건강했거든요

 

2017년 당뇨가 왔고 지나고 보니 2018년 암이 재발했으니

우연의 일치 일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 외는 암 재발을 설명할 마땅한 뭔가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원래의 나로 돌아가자고 카메라를 챙겨서 길을 나선 겁니다

 

그동안 얼마나 무관심 했었는지

이번에 출발 전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는데 배터리 3개 중 2개가 아예 충전이 안 되고 손도 못 댈 정도로 발열이 심했습니다

가끔 한번씩 충전을 해줬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게으른 탓에 돈 나가게 생겼습니다

 

어쨌거나 앞으로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출사를 가려고 합니다

혼자 나가기 뭣하면 주말에 가족이랑 굳이 사진이 아니더라도 바람이라도 쐴 겸 나가야겠습니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억수로 많으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벙어리로 첫 며칠 나들이를 하면서 신기한 게 있었는데요

내가 말을 못하니 수첩에 메모랑 자연히 손짓 발짓을 했는데 웃기는 건 상대방도 갑자기 벙어리처럼 손짓발짓을 한다는 겁니다

내 입모양을 보면서 자기도 목소리를 죽이고 벙어리처럼...

 

태백 당골 초입에 1년에 두어번씩은 꼭 가는 식당이 있습니다

이번에 그 식당에서 세끼를 먹었는데 나를 기억도 못하시던 그 식당 주인아줌마... 나더러 젊은 사람이 불쌍해서 어떡하냐며 눈물을 훔치시더군요

그 집 청국장이 참 맛있었지만 차마 더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했고 앞으로 더더욱 그러겠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짐이 되거나 나로 인해 누군가가 슬퍼지는 거 절대 원치 않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남은 삶 살다 가려구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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