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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그 때를 아시나요



[어제 아침 대구 수성못]

예년의 경우 이맘 때 쯤이면 휴가 계획을 세우곤 했었는데

올핸 장마 탓인지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습니다

물론 [방콕]이야 하겠습니까마는...

휴가 생각을 하니

한창 나이 때 그 혈기왕성했던 시절 생각이 납니다

그 시절엔 여름이면 배낭에 텐트랑 취사도구 챙기고

[대한민국 전도] 한 장이면 우리나라 어디건 못갈 곳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게 그 시절보다 모든 여건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데

정작 갈 곳이 없습니다

큰 아이 유치원 다닐 때니까

이십 여 년 전 사업 한답시고 정신없이 살던 시절이라

여름이지만 휴가는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가니

큰 녀석이 가방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뭔 일인가 싶어 물어봤더니

유치원 방학을 했는데 아마 선생님께서 부모님이랑 재미있는 여행을 다녀오라고...^^;

바빠서 못 간다고 했다간 아빠 맞는지 유전자 검사하자고 덤빌 것이고

[그래... 돈 벌고 자식 잃으면...]이라는 생각에 같이 가방을 쌌습니다

자가용에 가득히 짐을 싣고

[출발~] 하면서 신나게 나섰는데

어... 어디로 간다냐...?

이미 밖은 깜깜해졌고

일정은 고사하고 행선지조차 정하지 않았고

이거야 말로 [가출]...

가까운 경주로 가서 겨우 방 하나 구해서 잠자리에 들긴 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마땅한 행선지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일단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문득 [불영계곡] 생각이 났습니다

다행이 텐트랑 취사도구도 가져왔으니 [그래... 야생으로 돌아가자]

저녁이 다 됐을 무렵 불영계곡에 도착해서

겨우 텐트를 치긴 했는데...

아뿔싸...

급하게 오느라 먹을 거라곤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온 겁니다

애들더러 텐트 지키라고 해 놓고

급하게 차를 몰아 마을 쪽으로 가봤지만

그 시절엔 변변한 편의점도 없던 시절이고 시골이라 해지면 가게도 다 닫고...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가게 하나를 발견하고

종이상자에 무작정 담았습니다

그래봤자 쌀이랑 통조림 서너개

양파랑 풋고추랑 채소 조금이 전부였습니다

텐트에 돌아오니 두 녀석은 춥고 배고프고 무섭고

둘이 마주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그새 눈이 퉁퉁 부어서...^^;

할 수 없이 옆 텐트에서 버너를 빌렸습니다

버너 하나엔 밥을 하고 다른 버너에 반찬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종이상자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무지 대책이 없었고

그래서 코펠에 꽁치통조림 하나에 양파 썰어 넣고

고춧가루 좀 풀어서 대충 끓여서 밥을 줬는데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처럼

두 녀석이 어찌나 잘 먹는지... ㅎㅎ

그렇게 며칠을 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하루는 두 녀석이 그 때 불영계곡에서 먹은 [꽁치통조림 찌개]를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온갖 양념을 넣어서 정말 맛있게(?) 끓여줬는데

두 녀석이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거 말고 놀러갔을 때 먹은 걸로 달라네요

[이놈들아 이게 양념도 더 많이 들어갔는데 뭔 소리여?]

그 후로 몇 번을 더 만들어 줬지만 아니랍니다

[그라마 느그가 해무라 야이 문디야~~~]

건강하세요
















Canon EOS 1Ds MarkⅢ + EF 24-70mm f/2.8L U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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