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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이슬

[강원도 평창 - 2010 10 01]

사진이라는 취미를 하다 보면

때로는 전혀 엉뚱한 것에 몰입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신없이 한참 셔터질을 하다가 정신이 들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그 땐 이미 메모리 카드에 요상한 사진이 가득하지요

나이가 들면 혹은 늙으면

조금씩 조금씩 비우고 놓아야 한다는데

나는 왜 엉뚱한 것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잃은 여자가 먹는 걸로 그 허함을 채우고

사랑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술로 그 반을 채운다던데

나의 엉뚱한 집착은 무엇에 대한 보상심리일까요...

꽃 보러 오라는 아우의 연락에

그렇잖아도 먼 길을 더 일찍 출발하고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 산길 초입에서

가녀린 풀잎에 더 가벼이 매달린 이슬

전혀 생각지도 않은 그 이슬에 나도 매달려 버렸습니다

축축한 풀밭을 한참 뒹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면서요

생각을 했습니다

해가 뜨면 이슬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이슬은 내일이면 또 그 자리로 돌아온다

거기까지면 족한데

너무 식상하고 너무 신파극 같은 생각을 연달아 합니다

이슬은 그런데 나는...

넌 뭐... 문디...

술은 늘 마시던 술이 아침에 머리 덜 아프고

담배도 늘 피우던 게 제일 맛있습니다

살면 얼마나 살 거라고 시덥잖은 걸로 뒷골 아픈 생각을 하는지

이슬이라는 이름의 술은 있지만 정작 이슬은 술 마실 수 없고

아무리 시인들이 순결하네 어쩌네 찬양해봤자 그냥 물방울일 뿐

고작 반나절이면 상황 끝 아니겠냐고...

그냥 살아온 날들처럼 살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어설픈 감정은 이 산 저 산 골짜기에 슬며시 버리고

누가 자연 훼손이라고 고함을 치건 말건 그냥 얼씨구나 살자

중부내륙고속도로 안동휴게소 우동에 이상한 재료가 들어갔나 봅니다

맛나게 잘 먹고 나서 아무 이유도 없이 이슬에게 트집질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곱게 늙어야 남들에게 손가락질 안 받는데...

국가단위 멸종위기종 건망증으로도 부족해서

덤으로 이젠 치매까지 오나 봅니다

암튼 불쌍한 중생이지요... ㅎㅎ





찍어둔 야생화가 제법 많이 밀렸는데

올해 야생화도 어느덧 그 끝을 보이니 슬며시 아깝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꽃 없는 겨울에 곶감 빼먹듯 하나씩 꺼내기로 하고

당분간은 그동안 오며가며 찍어둔 풍경 사진이나 좀 올릴까 합니다

야생화 사진도 그렇지만

풍경 사진은 정말 제 소관이 아니고 그걸 찍겠다고 야생화처럼 전국을 누빌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오며가며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으면 차 세우고 몇 장 담는 수준입니다

아직은 주위 눈치 안 보고 땅바닥에 철푸덕 엎드리고 뒹구는 게 편합니다

더 늙어서 무릎 시리고 옆구리 찬바람 돌면 그러라고 등 떠밀어도 못하겠지만...

올해 야생화 사진은 이제 하나 정도 남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녀석을 알게 될 진 모르지만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그 녀석이 필 때까지 풍경이랑 예전에 이미 번호를 매긴 녀석들을 올리려고 합니다

작년에 번호를 매겨서 올렸지만 올해 다시 찍어서 안 올린 녀석도 제법 많거든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사진은 참 부잡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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