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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야생화를 기다리며...

[항구 - 2010 02 28]

올 겨울이 유난히 춥고

이게 뭔 일인가 싶을 정도로 눈도 많이 왔습니다

눈길엔 티코보다 못한 후륜구동 승용차를 소유한 탓에 설경은 그림의 떡인지라

그 잦은 폭설에도 변변한 설경 한 장 담지 못하는...

저야 뭐 지구방위사령부(예... 똥방위입니다 ㅎㅎ) 출신이고

그나마 또 의가사(독자방위) 6개월짜리다 보니 입소했나 했더니 소집해제가 됐지만

현역으로 간 친구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꾸로 매달아놔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나 뭐라나...

지지리도 춥고 눈을 퍼부어댔지만

그래도 온 산하에 봄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꽃이 필 시기가 다가오니 또 걱정이 앞서네요

뭔 걱정이냐... 수난을 당할 야생화 걱정요

작년까지 있던 야생화가 다음에 가보면 남획으로 전멸을 당하기 일쑤고

조금 늦게 가보면 먼저 다녀간 진사들에 의해 보기 민망할 정도로 훼손되기 일쑤고

제 집구석에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는 인간들이 뭔 산에 와서 그리도 열심히 청소를 해대는지

꽃 주변을 깨끗하게 치워버려서 일찍 핀 꽃은 야간의 추위에 얼어서 시들시들하고...

남획이야 제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진사들 또한 어쩔 수 없는 사항이지만

사진을 찍으러 가서 꽃 주변의 잡초나 낙엽을 치우는 행위는

진사들이 조금만 욕심을 줄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비싼 경비 들여서 출사 갔으니 멋진 사진 찍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간혹 그런 충동을 느끼는 게 솔직한 심정이구요

그렇지만 조금만 내다보면 한번만 더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부질없고 나쁜 행동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른 봄에 핀 야생화 주변의 낙엽을 걷어내고 잡초를 제거하는 건

본인의 자식을 엄동설한에 홀딱 벗겨서 쫓아내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3월 4월이 포근한 것 같아도 산속의 그 시기는 밤이면 영하로 기온이 내려갑니다

입으로는 마치 본인이 이 세상에서 야생화를 가장 사랑하는 인간인양 떠들면서

갈수록 야생화 개체수가 줄어든다면서 안타까운 척 한숨을 내쉬면서

정작 산에서 하는 짓은 완전 개 머시기 같은 인간들...

대체로 좀 일찍 피면서 좀 귀하다 싶은 야생화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등등

자생지에 가보면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뿌리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주변을 깎아내고

주변에서 돌이나 나무뿌리를 줏어와서 멋지게 장식까지 하고

분무기로 물까지 뿌려가며 지랄을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욕이 절로 나옵니다

심지어 주변에 있는 꽃을 뽑아서 한자리에 심어놓고 사진을 찍는 인간도 있습니다


올해 들면서 한가지 생각한 게 있습니다

올해부터 그런 인간들을 만나면 그 쌍판대기를 찍을 겁니다

찍어서 제 블로그에 예쁘게 올려드리려구요

초상권?

자신 있으면 신고하라지요

제가 아는 제 이웃분들 중엔 그런 분 절대 없습니다

애시당초 그런 인간이랑은 왕래를 안 하니까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올해만 그 아이들 만나고 내년에 세상 하직할 생각이 아니라면

제발 그 아이들 그냥 있는 그대로 담고 돌아오십시오

댁이나 나나 야생화 사진 멋지게 찍었다고 팔자 고칠 일 절대 없습니다

좀 아쉽고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게라도 만나고 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올해 멋지게 담고 내년부터 꽃 없다고 탄식만 하시렵니까?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개울물 흐린다는 속담처럼

몇몇 인간들 때문에 전체 야생화 진사들이 욕을 먹습니다

언제부턴가 카메라 들고 산에 가는 게 창피합니다

이런 글 올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슬픕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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