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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넋두리 (수필)

대흥사 (大興寺)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三山面) 구림리(九林里) 두륜산(頭輪山:大芚山) 도립공원에 있는 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완도라는 아담한 다리건너 섬에 살지만

 

물에 풍덩 하기엔 좀 쑥스러워 휴일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기껏 산을 찾곤한다

 

그렇다고 중무장(?) 하고 등산을 하는 건 아니고

 

샌들에 헐렁한 면티하나 걸치고 어슬렁거리며

 

경치 구경이 고작이다

 

 

지난 휴일에 사무실에서 가까운 대흥사를 찾았다

 

산 입구에서 주차비 명목으로 2천원을 달라고 한다

 

진입하다 보면 사찰 입구에서 이번엔 입장료를 이천오백원 달랜다

 

(중이 고기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질 않는다더니...)

 

 

입구에서 사찰 초입까지

 

전 구간이 나무 그늘로 정말 멋있고 시원하다

 

 

 

 주차장에서 나오다보면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저처럼 호박돌로 탑도 쌓아놓고 보도 만들어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도록 해두었다

 

아마 놀러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쌓아서 만들었겠지...

 

 

 

 물 속에는 송사리랑 피리같은 깨끗한 물에만 서식하는

 

우리네 토종 민물고기도 많았다

 

(사진에서 고기 안 보인다는 분은 마음이 나쁜 사람이다 )

 

 

 

 

 그늘에 잠겨있는 길을 건다보면

 

개울을 가로 지르는 그림같은 다리가 몇개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널때 마다 마음도 조금씩 자연과 동화됨을 느낀다

 

 

아직도 구 시대적 권위의식에 젖어

 

경내까지 차를 끌고 올라오는 몰염치한 인간들의 경적소리가 조용한 자연에 소음을 일으킴이

 

못 내 이물감을 느끼게 하는 것 말고는 정말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겨울을 붉게 물들였던 동백

 

탐스러운 열매로 여름을 익히고 있었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들께서 저 열매로 기름을 얻어

 

곱게 머리단장 하셨던 시절도 있었는데...

 

 

 

 

 

 

 

 

 

 

 

 

사찰 초입 우측에

 

서산대사 부도를 비롯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고인 고승들의 부도가 모셔져 있다

 

살아 업적을 남기고 죽어 이름을 후세에 남긴 흔적들...

 

 

 

 

 

 

아쉽게도(?) 사찰은 공사중 이었다

 

유서 깊은 사찰이라 몸집 여기저기 탈도 나겠지...

 

 

 

 

 

 

앞마당 우측으로 대웅전 가는 길목의 나무

 

세월의 무상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매표소에서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으면 40분 남짓 걸리는 대체로 편평한 길이다

 

따가운 햇살이 없는 시원하고 한적한 산책코스로

 

등산이랑은 거리가 멀다

 

 

대흥사를 거쳐 대둔산에 오르는 등산코스는 별도로 있고

 

등산을 겸해서 오시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순전히 [본다]는 개념으로 갔기에

 

사진만 몇장 찍어 왔으므로 대흥사의 유래도 몰라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참고로 매달아 둡니다

 

여행 오실분은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검색 내용]

 

 

 

대둔사(大芚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이다.

 

이 절의 기원은 426년 신라의 승려 정관(淨觀)이 창건한 만일암(挽日庵)이라고도 하고,

 

544(진흥왕 5)에 아도(阿道)가 창건했다고도 하며,

 

일설에는 508(무열왕 8)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비구승이 중창(重創)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으나

 

모두 확인할 길이 없다.

 

그 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사찰의 규모를 갖추지 못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절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西山大師)가 거느린 승군(僧軍)의 총본영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604(선조 37) 서산이 자신의 의발(衣鉢)을 이 곳에 전한 후 크게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 후 1665(현종 6) 심수(心粹)가 대웅전을 중창하고,

 

1669년에는 표충사(表忠祠)를 건립하였으며,

 

1813년에는 불탄 천불전(千佛殿:지방유형문화재 48)이 재건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抑佛)의 탄압 속에서도 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의심(義諶삼우(三遇도안(道安문신(文信추붕(秋鵬) 13인의 대종사(大宗師)

 

원오(圓悟광열(廣悅영우(永愚) 13인의 대강사(大講師)를 배출시킨 명찰이다.

 

경내에는 대웅보전·침계루(枕溪樓명부전(冥府殿나한전(羅漢殿백설당(白雪堂

 

천불전·용화당(龍華堂도서각(圖書閣표충사·서원·서산대사기념관·대광명전(大光明殿만일암 등 기타 많은 당우(堂宇)가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응진전전(應眞殿前) 3층석탑, 북미륵암(北彌勒庵) 3층석탑,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 등이 있다.

 

또한 서산대사를 비롯한 여러 명승의 부도(浮屠)와 탑이 있으며,

 

특히 서산대사의 유물과 이광사(李匡師김정희(金正喜이삼만(李三晩)

 

역대 명필들의 필적으로 된 각종 현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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