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큰산국
[2011 09 26]
11 - 833
국화과 여러해살이풀 키큰산국
참 신기한 녀석입니다
얼핏 보시기엔 꽃이 구절초랑 구분이 어려우실 겁니다
뭐랄까... 팔색조 같은 녀석이랄까요...
일단 꽃은 구절초랑 흡사하고
잎은 쑥부쟁이랑 거의 흡사합니다
고로 구절초랑 쑥부쟁이 교잡종이 아닐까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만
자생지가 습지라는 게 그런 생각을 뒤집는 녀석입니다
자생지를 감안하면 진퍼리구절초 혹은 진퍼리쑥부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을 감안하면 어느 녀석과도 닮지 않은 정말 신기한 녀석입니다
이 사진을 찍은 날은 오후 내내 습지에서 놀았습니다
다음에 올릴 아주 귀한 녀석을 만나러 갔다가 부랴부랴 이 녀석을 만나러 갔는데
시간이 늦어서 어둑어둑한 시간에 담았습니다
습지에서 놀았으니 신발도 바지도 엉망진창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너무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노안에 난시까지 있어서 야간운전을 정말 싫어하는데 그날은 그 밤길도 너무 환하게 느껴졌습니다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한가위도 아니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뭐 그런 마음...^^
국가단위 희귀식물(위기종)입니다
살다보니 참 별일도 다 있습니다
내가 멍청하고 건망증 심하고 국가단위 멸종위기 치매환자라는 건 세상천지가 다 아는데
드디어 나도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사진을 찍어오면 일단 리사이즈부터 하고
그 다음에 포스팅 할 파일 넘버를 골라서 메모장에 적어둡니다
한번 출사에 보통 수백 장 사진을 찍어오니까 선별하는 것도 제법 귀찮고 까다로운 일인데
지난 9월 28일 이후로 번호 선별을 못하고 있습니다
리사이즈를 다 해놨는데 왜 선별을 못하느냐...?
필기도구가 없습니다
밖에 나갈 때마다 오늘은 사와야지... 또 나가면서 오늘은 기필코 사야지...
그렇게 아침마다 다짐하고 작정한 게 벌써 열흘이 넘었습니다
송곳으로 손가락 찔러서 혈서를 쓸 수도 없고
그저껜 드디어 감격스럽게 기억을 하고 자그마한 문방구에 갔었는데 내가 원하는 필기구가 없는...
꼴에 곧장 죽어도 수성펜을 쓰는데 그 문방구엔 볼펜만 있더군요
그 사이에 충청도도 다녀오고 강원도도 갔었고
이미 예전에 봤지만 너무 귀엽고 예뻐서 주왕산에만 사는 녀석도 만나러 갔었고
한동안 안 갔었던 팔공산너머 돌담마을도 갔다가 주름잎 변이종도 찾았고
이즈음에 야생화 사이트 단골 출사지인 경남 합천의 어느 산에도 갔었고
눈 비비며 새벽의 우포도 두 번이나 갔었는데...
오늘 올리는 키큰산국이랑
우리나라 최대의 습지인 우포의 아침 풍경을 같이 올리면 제법 그럴듯할 것 같은데
필기도구 없어서 그냥 이 녀석만 올린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참 기가 찹니다
이런 쓸모없는 중생은 염라대왕도 왕따를 하는지...
역시... 죽으면 늙어야지...
건강하세요